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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1 07:04
내 인생의 아름다운 한 굽이(오봉교회에서 단식하며 지낸 열흘) - 이상석
 글쓴이 : 열정과불안
조회 : 2,297  

내 인생의 아름다운 한 굽이
- 오봉교회에서 단식하며 지낸 열흘


2015년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딱 열흘. 나는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오봉교회에서 아늑한 쪽방을 하나 차지하고 꿈 같이 아름다운 단식을 했다. 함께 단식한 사람은 박성진 지영진 부부. 교회에서 단식을 보살핀 분들은 장석근 목사님 정순득 사모님이 박성희 원장님이다.
몸살림운동으로 병 치료를 하는 친구가 나더러 제발 식습관뿐 아니라 생활의 근본 태도를 바꾸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담배와 술은 그대로 즐겼고 먹는 것도 조심하는 일이 없었다. 그 친구는 ‘황성수’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현미 채식 자연식단 체험하는 곳을 가보고 오란다. 인터넷을 보니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2주 동안 콘도에서 생활하는데 최저 160만(4인 공동실)에서 245만 원(1인실)이다. 이건 감당이 안 되는 돈이다. 하루 18만 원을 들여서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자들만 하는 짓이다, 알량한 지식으로 돈벌이에 나선 사람이구만, 싶은 생각이 들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 친구, 살이라도 좀 빼고 왔으면 하는 눈치다. 이런 중에 마침 성진이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 집사님이 정기 단식 교실 외에 덤으로 자기 부부만을 위해 단식 지도를 해주겠다는 말씀을 하시던데 형님도 함께 하겠느냐고 물어 왔다. 공식적인 비용은 열흘에 20만 원. ‘황성수’ 식으로 하면 하루 묵을 돈이다. 맑은 곳이로구나. (물론 우리는, 내가 20만 원 성진 부부가 20만 원해서 헌금 형식으로 더 내긴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헌금이다.) 당장 가기로 했다.
단식 시작 전에 교회로 찾아가 이를 운영하는 집사님을 만났다. 보라색 머리칼를 손갈퀴로 쓸어 넘기며 오는 사람은 한 40대 여인 같은데 카리스마인지 까칠함인지가 대단하다. “단식 들어오기 1주일 전부터 술과 담배를 끊고 들어오시오. 못 지킬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오지 마세요.” 목사님은 옛날에 한두 번 만나기도 했고 그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게 십수 년 전이겠다. 그런데 나를 아주 오래 사귄 사람이나 되는 듯이 내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신다. 나는 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10월17일 아침, 마지막 담배 한 개피를 태우며 금연을 결심했고, 실천해오고 있다.


첫인상

끌가방을 끌고 작은 언덕을 올라서니 교회 마당이다. 주뼛거리며 들어서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헐렁한 티셔츠바람에 부엌일을 하던 모습 그대로 나오시더니 단식하러 오셨냐며 반겨 맞는다. (알고 보니 이 분이 사모님이다. 늘 부엌에서 일을 하는 사모님이 끼치는 평화의 힘은 나중에 얘기하자) 뒤이어 나오는 분이 지난 번 만나 뵀던 단식 지도 사부님. 보랏빛 머리색깔이 인상적이었는데 오늘은 까마네. 뒤이어 성진이 내외 옴. 효소 물을 한 잔씩 마시고 방을 배정하는데 나는 이 교회의 맨 구석 돌아앉은 곳에 덧대어 지은 창고에다 칸을 질러 방을 하나 만들었는데 거기 머물란다. 방문 옆에는 무덤이 둘. 거기는 뱀이 지나다니는 길이라며 뱀이 많으니 창고문을 꼭 닫으란다. 뱀이 들어갈 수 있다고. 그리고 화장실이 없으니 큰 것은 좀 멀더라도 교회 안에 있는 화장실을 쓰고 작은 것은 이 무덤 가 어디든 다 쓰도 된다는 말씀. 단 뱀을 밟을 수도 있으니 잘 살펴라며 손전등을 하나 준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뱀인데 이게 무슨 시험이냐. 지금 뱀은 잠자러 들어가기 직전이라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으니 조심하란 말을 몇 번이나 하다니. 이거 잘못 온 거 아닌가. 밤에 오줌 누러 나오면 문 이래 뱀이 똬리를 틀고 있지나 않을까 물커덩 뱀을 밟지나 않을까 아래를 살피며 불부터 먼저 켜곤 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 열흘 있는 동안 무덤 가 아니라 산으로 들로 온통 돌아다녀도 뱀 꼬리 하나 못 봤다. 하루 지내보고 알았다. 두 여자 분이 워낙 뱀을 두려워한 때문에 한 말이었다는 걸. 게다가 알고 보니 이 방이 가장 아늑한 방이었다. 난 열흘 동안 잠 한 번 설친 적 없이 밤이면 밤마다 아주 편하고 달게 잠을 잤다. 성진이 부부가 가져온 이부자리도 편안했지만 온통 사방 벽을 나무로 꾸며놓은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본래 목사님 서재로 꾸미려고 한 방이었는데 이렇게 손님에게 내주거나 주일날은 아이들 놀이방으로 쓰고 있단다.


아침을 여는 말씀

처음 맞는 아침. 여태껏 늘 9시 10시에나 일어나던 습관 때문에 늦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쾌하게 잘 일어났다. 간밤 아주 잘 잔 때문이다. 소리 하나 없는 적막한 밤, 달디단 공기, 완벽한 어둠, 단잠을 이루기 딱 좋다.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신 바람에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며 뱀 공포에 좀 떨긴 했지만 감나무 아래에서 시원히 해방 시켰다. 하늘에 별이 총총했지만 첫날밤의 낯설음은 하늘을 바라볼 만큼 여유를 주지는 않았다. 서둘러 들어와 또 누웠다. 금방 잠들었다. 그리고 7시도 안 되어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시간을 기다렸다. 일정표를 보니 ‘07시30분; 아침을 열면서(옹달샘)’ 으로 돼 있다. 아침에 근처 옹달샘까지 다녀오나 보다 했다.
그런데 목사님이 마당으로 모여라고 하시더니 각자 나뭇잎 두 잎씩을 자기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따오라고 시켰다. 알고 보니 옹달샘은 목사님 별명이었다. 오늘은 목요일, 아침을 여는 말씀을 나무를 가지고 하실 모양이다. 나는 빨갛게 물든 붉나무 이파리와 노랗게 물든 아카시아 꽃잎을 따왔다. 목사님은 그새 소쿠리에 제법 많은 나뭇잎을 주우셨다. 혼자 예배당으로 가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더러 들어오라고 하신다.
들어서자 텅 빈 어둑한 공간이 예사롭지 않다. 그 텅 빈 교회 마루 한가운데 목사님이 쓰시던 새하얀 영대를 마치 강물이 굽이쳐 흐르듯이 깔아놓고 그 위에는 형형색색 금방 주운 나뭇잎들을 졸로로미 늘어놓았다. 그 끝에는 작은 촛대에 불을 밝혀 놓았다.


이것만으로 참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단식조 셋에 목사님 사모님 사부님 이렇게 여섯이 작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는다. 그리고 묵상. 목사님이 먼저 운을 뗀다.
“오늘이 목요일이죠. 그래서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나는 아까부터 이미 감정이 격해질 정도로 감동스러웠다. 여러 모양 빛깔을 지닌 단풍잎들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자세히 본다. 여기 놓여있는 나뭇잎보다 지금 막 떠오르는 해살을 받아 더욱 아름답고 장엄하게 빛나는 백 년은 묵은 듯한 팽나무에 아직도 무성한 잎들. 그리고 정갈한 교회의 어둑한 공간 속에 맑게 흐르는 목사님 음성. 위암 수술을 하고 단식 하는 것이 조금은 걱정스럽던 성진이, 그 위에 목사님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시켰던 시백 형 얼굴.이렇게 세상 구석구석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하시는 이 놀라운 일은 도대체 누가 주관하시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조화에 감읍하면서 마음이 젖어오고 있었다. 목사님이 물었다. 이 나뭇잎들을 보며 무얼 생각했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눈을 뜨고 있어도 뜨고 산 게 아니구나, 하느님은 이렇게 간절히 구석구석 하늘의 뜻을 전하고 있건만 이걸 내 모르고 살았구나. 이 장엄한 조화를 외면하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이런 말씀들을 전해 주셨다.
*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나무에서 열매나 껍질들을 구할 때는 몇 시간이나 기도를 하여 나무가 허락하는 말을 듣고 얻어 갔다.
* 나무는 우리에게 의식주 모두를 내어 준다. 이런 나무에 아브라함이 천사 세 명을 불러 그 아래 쉬어가게 하셨다. 상수리나무였다.
* 이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직선에는 신이 없다.
* 나뭇잎 모양 빛깔이 같은 것이 절대 없다. 다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교과서마저 획일화하려는 음모는 자연을 거스르는 짓이다.
* (내가 어딘가에서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이’란 말을 들은 것 같다고 하자 목사님은 다음 날 당장 시편을 복사해 주셨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시편1,1~3)
이 시간을 마치자 마치 인문학강연 한 편을 들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해온다. 세상에나! 단식이 그냥 단식이 아니구나. 나는 그냥 벽에 기대고 앉아서 책이나 읽다가 죽염이나 꼭꼭 찍어 먹으며 물을 마시는 단식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을 여는 말씀은 마치는 날까지 계속 되었다.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생각나는 것 몇 개를 기록해 둔다.
* 일출 보러 나갔던 날, 구름이 끼어 일출은 못 보고 해변에서 조가비들을 주워 왔다. 이것 역시 하얀 영대에 늘어놓고 묵상한다. 그 조가비들 가운데 가장 두껍고 큰 것인데 반으로 쪼개진 것이 있었다. 무늬가 신비한 것도 아니고 모양도 예쁘지 않다. “이 조가비는 왜 깨어졌을까요? 여간해서 안 깨지겠지요. 다른 종류 조개와 부딪혀서는 절대 안 깨져요. 그렇죠, 자기들끼리 부딪혀 깨어졌어요. 크고 강한 것은 이렇게 내분으로 자멸하지요.”
*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기2,7)
또 하나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간을 지으셨다고 말한다. 이 둘 중 어느 것이 와 닿는가. 흙으로 빚어 숨결을 불러 넣었다는 게 훨씬 구체적이다. 코에 숨결을 불어넣었기에 우리는 코로 들숨 날숨을 쉬며 산다. 신의 영성이 우리 몸속에 있다. 그래서 존귀하다. 히브리어로 ‘땅’을 ‘아다마’ ‘사람’을 ‘아담’이라 하는 것을 보면 어원이 같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땅=흙=사람이 된다.
나도 내 육신의 궁극적인 모습은 흙이란 생각을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가운데 아주 잠깐 동안 인연이 모이고 쌓여(하느님이 숨결을 불어넣어주셔서) 흙이 사람 형상을 하고 어머니의 몸을 빌어 태어난다. 그러니 이승의 영광이나 명예에 안달할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노래를 전하는 일 조차도 허망한 짓인지 모르겠다.
* 사람 몸은 거의 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을 잘 먹어야 건강하다
물은 ‘흐른다’. 막히면 돌아가고 다 막히면 넘어간다. 자기 갈 길은 반드시 간다. 가고야만다.
* 물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 지구 태초의 물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성진이가 씻은 물이 돌고 돌아 상석이가 마신다.
* “예수를 바라보며 똑바로 걸어가라. 너는 그 길을 가기 위해 목숨을 바치던 아주 좋은 사람이다.”


오봉교회

옛날에 시백이가 살아있을 때 여기 와본 일이 두어 번 있었다. 뾰족탑 위에 작은 십자가를 세운 자그맣고 오래 된 교회였지. 지금은 덩그런 팔작지붕이 부티가 난다. 마을전체 가옥들이 문화재로 지정을 받을 때 오래된 서양식 건물인 교회를 한옥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단다. 교회임을 알리는 조형물은 하나도 없다. 벌건 십자가도 없고 안내 표지판도 없다. 대신 나무로 만든 ‘열린 십자가’가 있다.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직사각형 나무 똑 같은 것을 두 개 켜서 거기 십자의 가로 부분만 파내고 두 나무를 적당한 간격으로 세우면 십자가 모양의 빈 공간이 생긴다. 이것을 ‘열린 십자가’라고 한단다. 나는 처음 교회로 들어설 때 그게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몰랐다. 교회 알림판, 이른바 간판이라도 좀 달자는 교인들 성화에 “올 사람은 다 찾아오니 굳이 간판을 달 일 아니다.” 하고는 손바닥만한 동그란 쟁반 모양 자기를 구워 거기에 오봉교회를 써 넣어 교회로 올라오는 길목 꽃밭에 작게 세워 두었다. 나도 이것을 보고서 교회를 찾았다.


이 교회는 헌금함을 돌리지 않는다. 예배당 들머리에 놓아두기는 했다. 할 사람만 몰래 하라는 뜻이다. 예배가 끝나면 서로 인사를 하는데 다 포옹을 한다. 이것도 참 좋았다. 목사님이 예배시간마다 단식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씀도 하고, 또 직접 인사말을 하도록 시간을 주어서 나는 하루 만에 보릿자루 신세를 면했다. 그 덕에 나도 스스럼없이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나중에 마을에서 만났을 때는 경운기에서 내려 나와 악수를 하는 노인도 계셨다. 일요일 예배 시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온 교인들이 둘러서 음식 앞에 감사 기도를 올리고 먹는 점심이다. 그야말로 풍성하고 정갈한 갖가지 음식들을 뷔페식으로 늘어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팥시루떡, 잡채, 손가락으로 눌러 만든 송편인데 통팥 소가 내 비치는 송편, 닭고기 볶음, 팥 넣은 찰밥, 싱그러운 샐러드...... 환장할 노릇이지만 우리는 방으로 쫓겨 들어가 흰죽을 먹어야 했다. 흰죽도 못 먹을 때는 점심시간에 우리 셋만 송호정으로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지. 물 한 통씩 들고 그것 마셔가며. 점심시간의 하이라이트는 설거지 시간. 수돗가에 목사님을 비롯한 남자 분들이 죽 둘러앉아 음식 그릇들을 씻는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예배 시간 중에 예순이 다 되신 분이 기타를 들고 나오셔서 노래를 한다. 그 노래가 너무 간절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다. 최창규 집사님이 올리는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주보를 보니 나와 있다. 최창규님은 훌륭한 가수 입니다! 평소에는 닭을 키우고 낚시를 즐기다가 또 이렇게 멋있게 노래하고 설거지도 곧잘 하는 멋있는 촌 늙은이이지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예배 시간에는 장로님 한 분이 나오셔서 종교개혁 당시의 시대상과 개혁의 의미를 설명하시는데 칠순이 넘으신 분의 말씀이 여느 분과는 다르다. 나중에 이 교회에 오래 다닌 말순 씨의 얘기를 듣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분은 **대 교수로 계시다가 퇴임하셨는데 권정생의 동화가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게 한 분이라는 것. 1969년 봄 권정생은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 현상모집’ 광고를 보고 <강아지똥>을 응모작으로 낸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제목만 보고는 아예 읽어보지도 않고 밀쳐두었는데, 이 분이 그것을 읽고 감탄하여 당선작으로 추천하게 된 것이란다. 말하자면 <강아지똥>의 발견자요, 권정생을 살린 분이다. 고맙습니다, 장로님!


동터오는 아침

(1)
아침!

들판 건너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오봉마을 하늘
황홀하게 물들이고
온갖 새들
나무와 풀들
생명의 기운
가득히 받는구나.
아름다워라
숭고하여라
거룩하고
다정하여라
이 손길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토록 싱그러운
생명의 숨결
부드러운 기운
내 몸을 감싸는구나. (10.25.06:00)

(2)
산골 가을 아침

산골 가을 아침을 맞는 일
내 평생 있을 수 없는 일
날마다 산골 언덕에서
아침을 맞는다.

새들 눈 뜨는 시간일까
일제히 제제거리는 소리
나뭇잎들 아직
제 색깔 드러내지 못하고
까만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이른 새벽

드디어
동터오는 하늘
새하얀 구름에 붉은 빛 감돌아
하늘은 더욱 새파래지는
산골 가을 아침

새하얀 몸피에
자작의 기품 서리고
무리 이루어
찬란한 숲
자작나무 숲
그 숲 한복판으로
햇빛 출렁출렁
눈 시린
산골 가을 아침  (10.25. 아침의 감동을 다시 시로 써봄.)

(3)
동터오는 하늘 가슴에 안다.

새벽 5시36분 일어나 하늘을 보러 나갔다. 시원하게 오줌도 누고.
새벽벽들 맑은 감청색 하늘에 또록또록 돋아있다.
별 셋이 총총총 나란히 박혔구나, 삼태성
아래 위로 이어 보니 장구 모양, 아! 오리온.
아는 친구 만난 듯 반갑네.
눈길 잠시 돌린 사이
별들 문득 하늘 속에 잠기고

맑고
밝게
열려오는
새벽
하늘
붉고
누런 빛
장엄한
구름
수천 교향악단의 연주 울려 퍼지고
드디어 떠오른 태양, 부시어 바라볼 수 없는
신들의 세상.

내가 몰랐던 세계는 늘 이렇게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아는 세계는 무엇이냐.
늦은 아침 도심의 시멘트 벽 안에서 일어나
기껏 창문 열어 맞았던 늦은 아침뿐이었던 세월.
집을 짓되 산중턱에 지을 일이다.
앞이 탁 트여 해고 달이고 온전히 맞이할 수 있어야 하리.(10.26 아침)

(4)
10월 27일은 음력 9월 보름날. 오봉교회은 나에게 이런 축복까지 내리시누나.

月出

오봉산
오르신
둥두렷
풍성히
원만한
부처님
어깨
눈부신
자비 (10.27)

(5)
아침

동녘 밝아온다.
감색 놀 말갛다.
빛 받아
생명에 보테다.(10.28)



나니님과 함께

일정표에 보니 ‘21:10 나니님과 함께’란 것이 있다. 이게 뭘까? 나니님은? 알고 보니 단식 하는 세 사람과 곁에 있는 세 사람(단식지도 사부님, 목사님, 사모님)이 모두 모여 하루에 한 가지 주제를 내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나니’는 사모님의 닉네임. 연애시절 이름이 촌스러워 편지 첫머리 ‘순득 씨에게’가 듣기 싫었다. 이름 좀 예쁘게 지어서 불러주세요. 그러자 신학도인 이 사람, ‘나니 님께’로 보냈네. 아이 예쁘라. ‘나니, 나니!’ 그런데 이 말은 무슨 뜻이죠? 응, 못난이을 줄였어.
첫날 ‘평생 자기를 잊지 않게 할 자기소개’로 시작해서 날마다 새로운 주제를 내는데 이건 좋은 글감이 되기도 하겠다.
* 내 인생의 turning point
* 나는 부부간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 내 평생에 고마웠던 사람
* 살아오면서, 그때 그 일은 참 잘 했다, 싶은 일
* 살아오면서,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나는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했나
* 스트레스를 푸는 노하우
이야기를 해가면서 저절로 우리 마음이 열려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지영진이 자기 살아온 삶의 아픔을 다 털어 놓을 때는 방 안 사람 모두 숙연히 그 아픔을 나누었다. 나도 참으로 오랜만에 외할매 이야기를 하며 북받치는 그리움에 울기도 했다. 오래 숨겨 두었던 내 삶의 진실 하나를 내보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간 사람은 사모님이다. 늘 자기가 주제를 내고 자기 이야기부터 꺼내놓는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마지막 날 밤, 마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나눈 뒤 나는 평소에 품고 있던 의문을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은 삶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말을 하고 보니 어리석은 내 마음이 보인다. 이것은 나 스스로 밝히고 극복할 일이지 누구의 말을 들어 깨칠 일이 아니다. 목사님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야기를 이어간다.
“요즈음 철학은 프로세스(process), 한 과정으로서 진실을 말하죠. 진실이나 사실이 변한다는 것, 한 과정이란 것이지요. …… 새처럼 들꽃처럼 살면 되겠지요. 새는 곳간을 짓지 않고 깃들인 곳이 자기 집이지요. 그래서 거칠 것이 없죠. …… 가슴이 뛰도록 행복한 일을 하고 사는 것 ……”
잠깐 말이 끊긴 사이 사모님이 말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나 진배없는 인생에게 무슨 크나큰 목적이 있겠어요? 게다가 큰 목표가 큰 가치를 갖나요? 나는 그저 오늘을 온전한 내 것으로 살면 되었다 싶어요. 그게 쌓여서 인생이 되겠지요. 한 가지라도 잘 했다 싶은 일 하면서. 그래서 나는 때 되어 찾아오는 사람한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삶을 살면 됐다 하지요. 그리고 나의 에너지를 위해 내 스스로 나에게 상을 주지요. 그 상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친구와 안치환 콘서트에 갔다 온다거나, 여행을 훌쩍 다녀온다거나. 나는 지금 내 소원을 다 이루었어요. 어릴 때부터 기도했거든요. 호수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작은 집을 마련케 해주소서, 그리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밥 대접할 쌀을 주소서, 하고요. 이 소원 다 이루어졌어요. 우리 집에서 보면 저기 송지호가 보이지요. 그런데 내가 기도를 잘못한 게 있어요. 쌀만 달라하고 반찬 기도를 빠뜨려서 우리 집엔 반찬이 시원찮아요.”
“죽음? 그건 우리가 잘 모르잖아요. 언제 죽을지, 죽고 나서 어떻게 될지. 그건 나의 능력 밖이예요. 모르죠. 그럼 그 분께 맡겨야죠. 전에 내가 탄 비행기가 고장이 난 적이 있었어요. 마구 흔들려요. 아 죽었구나 싶었어요. 그때 나는 노래를 막 했어요. 어쩔거예요. 내 영역 밖인데. 우선이라도 무서워 말고 즐거울라고 노랠 마구 했죠. 다행히 사고는 수습 되었고요.”
* 풀 한 포기나 진배없는 인생에 무슨 큰 가치나 목적을 찾으려느냐.
* 때 되어 찾아온 사람한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는 삶만 살면 되었다.
* 영역 밖의 일은 내가 알 일이 아니다. 하늘에 믿고 맡길 뿐이다.
이 세 마디가 법어가 되어 내 가슴에 자리 잡았다.


장석근 목사님

단식 중에 일기를 메모하다 말고 나는 목사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말을 쓰고 있다. 공책 구석구석 목사님께 감사의 말을 적고 있다.
“마루를 내려서려고 뒤뚱거릴 때 맨발로 내려서서 내 신발을 바로 놓아주시던 목사님,
내 방으로 가려고 모퉁이를 돌아가면 뛰어와 외등을 켜주시는 목사님
내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뻑뻑하여 잘 안 열리는 줄 알고 먼저 문고리 잡고 용 써 문을 열어주시던 목사님
그 무엇보다 날마다 아침을 여는 말씀과 깨달음과 지식을 주시는 목사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10.24)
“장석근 목사.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매력에 매료되기보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자정(慈情)을 먼저 느낀다. 뭉클뭉클 자정(慈情)이 솟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이야기, 그의 예술적 감각, 다만 세 사람을 데리고 아침을 열어도 온 정성을 다 하는 모습. 고맙고도 존경스럽다. 그러면서도 개구쟁이 같은 그의 웃음을 보고 있으면 금방 내가 안아주고 싶은 아우가 된다.
환경운동가 교육운동가로 앞장서 버팀목이 되는 사회활동가인 줄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며칠 생활하면서 겪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분이다. 혹여나 내가 교인이 아니라서 소외나 느끼지 않을까 온갖 배려를 다 한다. 둘째날 수요일 밤 성경공부 모임부터 예배 시간에는 꼭 단식하는 이들 위해 기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직접 인사하고 생각을 말하게 하며 어우러지게 한다.
목사님은 보기 드문 예술 감각을 지녔다. 주마다 손수 제대를 꾸미시는데 그 주의 주제가 되는 내용을 색깔 한지를 손으로 뜯어 형상을 만들어 붙인다. 이게 대단한 작품이다. 내가 처음 본 것은 도요새 한 마리가 물가에 쉬고 있는데 새의 눈에는 십자가가 반짝이고 있다. 하느님의 눈길로 세상을 보는 도요새? 다음 주는 산양이 한 마리 슬픈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으련만 사진으로만 남기고 뜯어내 버리는 눈치다. 아까운 일이다.
10월 28일, 나는 동터오는 아침을 맞으려고 눈을 부비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 컴컴한 새벽인데 예배당에 불이 켜져 있다. 누군가 하고 빼꼼히 들여다보니 목사님 혼자 엎드려 무엇을 열심히 벗겨내고 있다. 안날 KBS에서 예배당을 빌려 크리스마스특집 드라마 촬영을 했는데 이 때 촛농이 예배당 마루에 많이 떨어졌다고 걱정하시더니 이걸 혼자 벗겨내고 계신 것이다. 같이 하겠다고 엎드리니 화들짝 놀라며 다 했다시며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나를 이끌고 무조건 차에 태운다. 나는 슬리퍼 바람으로 중무장한 사진가들 곁에서 스마트폰을 열심히 눌러대어야 했다. 내 평생에 처음 보는 장엄한 일출을!
그의 성서 해설은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을 알게 한다.
* ‘예수님을 바라보며 똑바로 걸어 나아가자.’
자기가 나아가는 길에 탄압이 왔을 때 피 흘려 싸운 적이 있는가. 예수는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똑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천연기념물에 총을 쏜 자들에 맞서, 설악산엔 산양이 사는 데가 아니란 주장하는 거짓말쟁이들에 맞서, 밀양 할머니들을 가두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인 파업에 대해 손배소를 청구하는 사용주에 맞서, 그런 법을 만든 자본주의에 맞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
* 하느님은 유일하다. 내가 곧 하느님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하느님은 내 안에 계신다. 그를 믿고 따르는 내 안에 계신다. 내재적 하느님, 성경에 이렇게 기록 되어 있다. 그러나 가톨릭과 많은 교회에서는 이를 부정한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거기서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목사 신부뿐이다, 라고.
십자가(†)의 세로줄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상하, 주종 관계를 상징한다. 가로줄은 이 세상에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있는 내재적 하느님을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아버지’라고만 부른다. 하느님이 남성이란 사실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 시대의 정치 권력과 결탁, 아버지의 권위, 상하 관계를 강조 부각한 결과일 뿐이다. 성경에는 에덴동산을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위해 밤새껏 가죽옷을 지어주시는 하느님이 계신다. 모성을 느끼게 하는 하느님이다. 그러나 이런 하느님 모습은 절대 부각 시키지 않는다.
*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불리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14~17) 그리고 교과서 국정화 문제,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를 이야기하며 행동을 강조하신다.

나에게는 내 몸처럼 친한 벗도 있고 아우들도 있지만
예순 고개에 알게 된 새 벗이 셋 계시니,
나에게 공자와 맹자를 바르게 알게 하신 배병삼 교수가 계시고
나에게 지성인의 멋을 알게 하신 곽노현 교육감이 계시고
나에게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장석근 목사님이 계신다.


하루 일정과 몸무게 변화

07:00 일어나 몸무게 체크
07:10 몸 깨우기
07:20 물 한 잔으로 몸속 깨우기
07:30 아침을 여는 말씀 - 목사님
08:30 일곱 색 야채로 만든 주스 마시며 우스운 이야기로 마음껏 웃기
10:30 산야초로 만든 효소 마시기
10:40 풍광 좋은 산과 들 걷기 (송지호 둘레, 송호정, 자작나무숲, 마을 뒷산, 들판)
12:30 효소 마시기
14:30 효소 마시기
14:40 몸살림운동
17:30 일곱 색 야채 주스 마시며 웃기(이때 내가 주로 너스레를 떨었다)
19:00 효소 마시기
21:00 레몬, 자몽 오일로 몸 청소
21:10 나니 님과 함께 이야기

두 시간마다 시간 엄수하여 효소 마시지, 중간 중간 물을 하루 2리터 가량 마시지, 아침 저녁으로 일곱 가지 야채를 삶아 갈아 끓인 (죽 비슷한 것인데 죽이라고 하기엔 묽고 주스라고 하기엔 뻑뻑하고 그런데 우린 주스라고 하자 했다. 죽이라고 하면 남 보기에 굶는 것 같지 않으니까ㅋㅋㅋ) 주스 마시지. 배고플 새가 없었다. 잘 때 약간 배가 고팠지만 그건 쾌감에 가까웠다.

둘째날 아침부터 일어나자말자 몸무게부터 쟀다. 간단한 운동복을 입은 채로.
10.22  84.1 - 내 평생 가장 무거워진 상태.
10.23  83.2 - 얼른 내려가라
10.24  81.8 - 언제 80대를 벗어나나
10.25  80.9
10.26  80.8
10.27  80.4
10.28  78.9 - 이 날부터 내 방에서 발가벗고 쟀다.
10.29  78.9 - 이 날까지 단식. 흑흑 끝내 목표 77에 닿지 못했구나.
10.30  78.1 - 이 날부터는 야채주스 대신 멀건 미음 한 컵을 마셨다. 비로소 배가 고팠다.
              성진이 집으로 옴. 단식 이후 6Kg 빠졌다!
10.31  77.6 - 교회 있을 때보다 더 엄격하게 물 미음 마실 시간 챙기는 영진이
11.01  77.0 - 교회 다녀와서 사잇골로. 사과, 배 한쪽씩 먹고. 명길이 집에서 잠
11.02       - 명길이 집에는 저울이 없다. 12시차로 집에 돌아옴
11.03  77.4 - 밤10시부터 새벽4~5시에 자는 버릇들이기. 4시 일어남
11.04  77.6 - 4시 일어남
11.05  78.4 - 기어이 78로 늘어났다. 04:20 06:40 두 번 다 78.4
11.06  78.2 - 6시 일어남. 물 많이 마시기와 운동! 명심해라!
11.07  78.4 - 5시 일어남. 너무 집착하지 말자!


고마운 사람들

“선생님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요.”
나를 지켜보던 이데레사 선생이 한 말이다. 듣고 보니 사실 그렇구나. 어릴 때 외할매한테서 받은 사랑으로 시작 되어 평생 단 한 번도 떨어져 살아본 적 없는 어머니가 구순이 다 되어가도 꼭 당신 스스로 밥을 해주고 싶어 종종걸음을 치시는 걸 보면.
이번 단식도 그렇다. 그냥 단순한 단식이 아니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한 굽이가 된 귀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갖도록 해준 사람은 박성진과 지영진이다. 본래 자기 둘이만 하게 된 단식이었다. 어째 나를 초대할 마음을 가졌을까. 부부간에 단출하게 지내면 더 좋을 텐데. 더욱이 내가 부산에서 요이불을 가지고 오면 수고스럽다고 자기들이 준비하였다. 연을 맺은 지는 두어 해 밖에 안 됐지만 아주 든든한 교육동지이기도 하고 친형제 만큼이나 사랑하는 아우들이다. 두 사람 다 살아온 삶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이 땅의 아이들을 지겹고 억압된 학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혁신학교 운동에 열심이다.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 타성에 젖어 있는 교사들 때문에 이들은 고통 받고 있다. 얘들은 오봉교회 단식을 마치고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나에게 보식을 허투루 하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고 자기네들 집에서 한 이틀 확실한 보식을 하고 내려가라는 거다. 그러면서 서슴없이 자기들의 안방을 내놓는다. 방이 두 개인데 안방을 제하면 옷방이 하나다. 그러니 이 부부는 내게 저거 잠자리 내놓고 거실로 내몰렸다. 하도 고마워서 e마트에 데리고 가서 생필 밥그릇 같은 거 좀 사라해도 눈치가 9단인 이 친구들은 휴지 정도 사더니 한사코들 필요 없단다. 이 집은 분명 신혼집이지마는 있어야 할 것만 있고 없어도 될 것은 단호히 없앤 선방이다
텔레비전×  오디오×  전자렌지×  가습기×  침대×
서재○  참 좋은 책들○  몸살림운동기구○  각종 차○  형형색색 찻잔(셋트아님)○
사잇골 식구들. 식구끼리 고맙다느니 마느니 얘기하는 게 아닐 것이다. 강릉까지 날 데리러 오고 강릉까지 나를 바래다주고, 안방을 비워 두고 잠을 자게 한 내 동무들. 그래 우리 끼리는 이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란다.
내가 고마워 인사드릴 사람은 따로 있다. 이번 단식을 책임지고 이끌어 주신 박성희 사부님(알고보니 윤석 선생님의 부인이시더라). 처음 만나 인사 나누던 날, “단식 일주일 전까지 담배를 끊을라면 오시고 못 하겠다 싶으면 아예 오지 마세요.” 단호히 내자르던 모습이 인상적이던 분. 무슨 일을 함께 할 때 이끄는 이는 이런 단호하고 엄한 기풍을 세워주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대강 묻어가기를 잘 했다. 그래놓고는 늘 반성 후회하곤 했지. 사부님은 끝날 때까지 열흘 동안 효소 먹을 시간, 야채주스 먹을 시간을 놓친 적이 없다. 이보다 더 놀라고 고마운 일은 나의 발뒤꿈치, 나의 머리밑까지 세세히 마음을 다해 치료하신 일이다. 간호사 출신이라 직업의식이 남아 그랬을까. 내 발뒤꿈치가 굳은살이 앉고 갈라진 것을 보고 당장 발을 끌어안고 오일마사지를 해준다. 날마다 그랬다. 내 머리밑엔 건선이 기승을 부려 자칫 비누를 잘못 쓰거나 한 이틀이라도 머리를 안 감으면 허연 비듬 같은 게 떨어진다. 나도 내 비듬에 질색이다. 이 분은 맨손으로 내 머리밑을 구석구석 휘저으며 마사지를 한다. 더럽다 생각하지 않고 남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 천사지 누가 천사냐. 이렇게 고마운 사람 첨 봤다.
목사님과 사모님한테 받은 은혜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우린 새로운 인연을 맺어나갈 것이다. 이젠 남이 아닌 사람들이다.
그리고 새로 만나면 참 반가울 교우님들도 그립다. 머리밑 치료한다고 오일을 바른 채로 예배에 참석했더니 어떤 여자 분이 그랬지. “머리에 뭔 조청을 그리 발라가지고서는....” 다음에 머리 감고 만났을 때는 “오늘은 조청 어떻게 했습니까?” 정을 붙이는 이런 농담을 어디서 또 들으랴. 예배시간 기타반주로 노래를 해주시던 최창규 집사님, 종교개혁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던 장로님, 나더러 말을 참 구수하게 잘 한다시던 아, 그만 성함을 잊어버린, 안경 쓰신 그 분, 참 곱게 늙어 가시던 할머니 그 분, 가게 이름이 ‘하예’라 하셨던가? 뭘 팔면 좀더 주고 싶어서 손이 자꾸 간다는 그 분……. 다시 만날 때는 나도 밥을 함께 먹고 수돗가에 둘러앉아 설거지도 해야지.
아! 그리워라 오봉교회, 그리고 목사님! (2015년11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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